1월 29일과 30일 장례

2020. 1. 31. 08:22스크랩 글/가족이야기

 여행 다녀온 후 석회 성분이 내 몸에 남아 있었는지 각질 같은게 자꾸 일어나

29일이 수용일이라 동네 목욕탕이 여는 날이라

아침 일찍 목요을 다녀온후

이른 점심을 간단히 먹고

12시 30분경 괴산으로 향했디

3시경 도착해 커피 한잔 마시고

언니 모시고 구미 차병원으로 향해 5시경 도착 된것 같다

이미 많은 식구들이 와 계셨고

희섭이 민섭이 꼭지가 나를 안고 많이 운다

특별히 큰오라버니가 나를 사랑해 주신것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울 나를 붙잡고 우는것 같다

올케도 "니 오빠 갔다" 하면서 울어 또 한참 울었다

주간 보호 센타를 다니시다가

명절이라 오지 말라고 하여 집에서 케어 하던중

명절 첫날부터 급격하게 상태가 안좋아 지더라고

응급실을 갔는데 이런 저런 검사로 얼마나 환자를 괴롭게 하는지

어차피 가는 사람 더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며 집으로 모시고 왔는데

그리 쉽게 가시더라고...

일태 내외와 같은 식탁에서 저녁을 먹고

이런 저런 다른 식구들과도 이야기 하는데

저녁 시간이라 조문객들이 자꾸 들어 오기에 자리를 피해 주느라

용주오빠댁으로 모두들 들어가

오랫만에 범주 오빠내 조카들 진섭이와 진섭이댁 아들과 딸 (27살 23살)

미숙이와 정서방

미경이와 백목사

용주오빠와 올케 영섭이 병섭이

덕주 오빠와 올케

매화 언니

일태내외등

20여명이 모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진섭이와 미숙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버지의 외고집과 아무때고 소리 지르고 억박질러 주눅들어 살아온 과정들을 들으며

함게 한숨쉬고 들어주니 이 아이들은 조금 시원해 지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를 이해 시키기 위해 아버지의 어린 시절

큰아버지 비교 차별대우를 당했다는 이야기와 팔이 왜 왼쪽 손이

어떤 사고를 잃었는지를 다시 이야기해 주었다









아침 9시 발인 하여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후

40분 거리에서 화장을 한 다음 해평 선산으로 모신다 하여

일부는 아침에 병원과 성당까지 다녀오고

일부는 12시경 산소로 곧장 가니 아직 운구행열이 오지 않아

먼저 올갱이 된장국으로 점심을 먹고 산소를 둘러 보았다


마침 지현이와 지섭이도 먼저 왔기에

이야기할 기회를 엿보다가

이제 부모 걱정은 그만하고 너희 자신의 삶을 살아라고 했더니

엊그제도 아빠가 술을 먹고 엄마를 때리려고 해서 도망치다가

엄마가 넘어져 얼굴이 저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자식으로 오갈때 없이 쫒겨난 엄마를 방치하고

 내 삶을 찾겠다고 모르는체 하겠느냐고 한참 항변을 한다

지섭이가 자기도 술을 먹어보니 아빠와 다를바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30살이후 10년이 넘도록 술도 안마시고

내 몸이 건강해야 엄마와 아빠를 지킬수 있겠다 싶어 운동도 하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

제주도로 전 가족들 데리고 여행도 다녀 오고 했다고 한다

잘했다고 해주고 네 아버지가 내 말은 잘 듣는 편이니

시간 만들어 아빠 엄마 모시고 춘천으로 오라고 했다

환경이 바뀌면 생각도 달라 질수 있으니

아빠도 온다고 했으니 꼭 오라고 이야기 하며 안아주며 토닥이고 헤어졌다

그아이들을 위해 두화 언니의 뒤를 이어 기도하겠다고 다짐해 놓고

지키지 못하여 저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것 같아 너무 가슴이 아프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부모 때문이니 더 애달프고

그로 인해 아이들의 덩치가 청소년 기에서 스톱이 된것 처럼 체격이 작아 더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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