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항리 모나미 2008. 12. 30. 19:17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러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애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 아 편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  경  리 =-